1895년에 살고 있던 수천 명의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했다. 정확한 실험 방법들이 확고히 구축 되었으며 많은 관찰되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이 있었다. 많은 부분에서 과학자들은 측정을 통해 비열, 밀도, 압축률, 비저항, 굴절률, 그리고 투과성과 같은 물리적 매개변수들을 측정하고 이해하는데 분주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주의 깊은 사고와 물리학의 실험 기법들의 적용을 통하여 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역학 분야가 특히 좋은 모습이었고, 그 응용 분야들은 기체의 운동 이론 및 통계 열역학의 멋진 성공으로 이어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러한 성공의 결과들이 현재의 거시적 세계에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시적인 규모의 자동차, 증기기관, 비행기, 전화, 전기조명 등은 그 당시 과학 기술의 업적들로 그 시대에 이미 있었거나 등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질의 원자 이론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앗으며 원자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추측 뿐이었다.물질의 구조 문제는 여전히 미궁이었다.
물리학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확실히 있었다. 깊은 사상가 몇 사람들만 그것들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켈빈은 1900년에 왕립 연구소에서의 연설에서 '지평선 위의 두 구름'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전자기적 물질과 흑체 복사를 설명하는데 실패한 고전물리학을 말했다. 여기서 이 문제들과 기타 문제를 언급한다. 그들의 해결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가지 돌파구인 양자 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끌어냈다.
전자기 매질
물리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파동들은 모두 전파하기 위한 매질을 가지고 있었다. 물결 파는 물에서 진행하고, 음파는 어떤 매질에서도 전파되었다. 물결 파는 물에서 진행하고, 음파는 어떤 매질에서도 전파되었다. 19세기 물리학자들은 당연히 전자기파도 어떤 매질을 통해 전파된다고 믿었고, 이 매질을 에테르(ether)라고 불렀다. 마이컬슨에 의해 수행된 가장 유명한 실험을 포함한 몇 가지 실험들을 통해 에테르를 검출하는 방법을 모색했으나 실패했다. 1887년에 수행한 마이컬슨과 몰리의 극히 정교한 실험은 매우 섬세하여 에테르의 영향을 관측할 수 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후속 실험 또한 부정적이었다. 1895년에 일부 물리학자들은 이 붙잡기 힘든 에테르를 감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전기역학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이 갖는 다른 어려운 점은 움직이는 물체에 의해 보여지고 느껴지는 전기장과 자기장과 관련이 있다. 어떤 기준계에서 전기장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 계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다른 계에서는 자기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전기장과 자기장 사이의 관계가 맥스웰의 방정식을 사용하여 이해로딜 듯하지만, 갈릴레이 변환 하에서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이는 헤르츠와 로런츠 둘다에게 모두 영향을 미쳤다. 헤르츠는 불행하게도 1894년 36살의 젊은 나리에 사망하여 현대적인 물리학 혁명을 경험하지 못했다. 반면 네덜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로런츠는 전기역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간이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수축한다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아일랜드의 조지 피츠제럴드도 독자적으로 동일한 개념을 제안하였다. 1892년에 제안한 로런츠-피츠제럴드의 가설은 1905년에 등장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앞선 선구자였다.
흑체 복사
1895년에 열역학은 단단한 기초를 바탕으로 많은 성공을 이뤄냈다. 열역학의 흥미로운 실험 중 하나는 전자기 복사의 전체 스펙트럼을 흡수하는 흑체라고 불리는 물체이다. 작은 구멍을 가진 닫힌 물체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모든 복사를 흡수하여 흑체 역할을 한다. 흑체 또한 복사를 방출하고, 방출 스펙트럼은 단위 면적당 방출된 전자기 출력을 보여준다. 방출된 복사는 모든 진동수 영역에서 고유의 강도를 갖는다. 흑체 복사 스펙트럼은 흑체 자체와 무관한 방출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이며 모든 흑체들의 특징이다.
키르히호프, 스테판, 볼츠만, 루벤스, 프링스하임, 루머, 빈, 레일리, 진스, 그리고 플랑크를 포함한 그 시대의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연구했다. 낮은 진동수 영역과 높은 진동수 영역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전체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단일 이론은 없었다. 그 시대의 가장 현대적인 이론이 문제에 적용되었을 때, 그 결과는 높은 진동수에서의 무한대의 방출률(또는 에너지 밀도)로 귀결되었다. 이런 이론의 실패는 '자외선 파국'으로 알려졌다. 1900년에 막스 플랑크가 이 문제를 해결하였고 이는 물리학의 근본을 뒤흔들었다.
1895~1897년 동안 원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모두 4개의 발견이 있었다. 첫 번째는 1895년 11월에 독일의 물리학자인 빌헬름 뢴트겐에 의한 x선의 발견이었다. 다음은 1896년 2월 주의 깊게 포장한 사진 건판 옆에 우라늄염을 놓아둔 프랑스 물리학자인 앙리 베크렐에 의해 방사능이 우연히 발견된 사건이다. 사진 건판이 현상되었을 때, 나타난 우라늄염의 윤곽은 투과성이 강한 선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세 번째 발견은 전자와 관련된 것으로 실제로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물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1833년에 전자의 증거인 기체방전 글로를 관찰했다. 다음 몇 년 동안, 여러 과학자들은 대전된 음극에서 방출되는 음극선이라는 입자의 증거를 발견했다. 1896년 페랭은 음극선이 음의 전하가 대전된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전자의 발견은 일반적으로 1897년에 전자(음극선)를 분리하고 그 속도와 질량에 대한 전하의 비율을 측정한 영국의 물리학자 J.J. 톰슨에 의해 이룩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기간 중, 마지막 중요한 발견은 1896년에 시편이 자기장에 놓였을 때 하나의 스펙트럼선이 때때로 두 줄 또는 세 줄로 분리된 것을 발견한 네덜란드 물리학자 피터 제이만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이만 효과는 곧바로 로런츠에 의해 원자 내부의 움직임에 의해 방출되는 빛의 결과로 설명되었다. 제이만 과 로런츠는 전자기학의 고전적인 법칙에 따라 빛의 진동수가 자기장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보여주었다.
1895년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1895~1897년 동안의 중요한 발견들은 현대 물리학이라는 이 책의 주제를 가져다주었다. 1900년도에 막스 플랑크는 흑체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에너지를 양자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자신의 복사법칙을 완성하였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 광전 효과, 그리고 특수 상대성 이론과 관련한 3편의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19세기 물리학자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지평을 넓히고 후대의 물리학의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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